영양취수당

영양취수당
종목 시도유형문화유산 (2002년 08월 19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시대 조선 정조 23년(1799) 중수
소유 함양오씨취수당공파종친회
관리 오창락
소재지 경북 영양군 청기면 청기1길 28 (청기리)

소개

조피골(조피)로 불리는 곳에 자를 덕원(德원). 호를 둔재라고도 하고. 종6품인 충무위부사과 (충무위부사과)를 역임하였고 중직으로는 정2품인 통훈대부 사복시정(通訓大夫 司僕시正)에 제수된 바 있는 취수당 오연 (오연 1598~1669) 선생이 1650년경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2칸 규모에 팔작지붕의 중층루각형 정자이다.

취수당 오연 선생은 임진왜란 때의 공훈으로 임진선무원종공신 (壬辰宣武原從功臣)에 선정된 문월당(問月堂)오극성(吳克成 1559~1617)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병자호란 때에는 쌍령전투(雙嶺戰鬪)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조선 인주가 청나라 태종에게 남한산성에서 항복했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영양 대천리(大川里)로 낙향하였다.

건물은 자연석 주초 위에 둥근 누하주를 세우고 그 위에 서쪽으로 망서루(望西樓)로 이름 지은 누마루를 들이고 동쪽에는 둔재(遯재)라 이름 한 온돌방을 각각 꾸몄다. 둔재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고, 망서루 앞에는 헌함을 설치했다. 조선 정조 23년(1799년)에 묘당과 함께 중수하였다고 기록한 만곡 조술도 (1729~1803년)의 중수기가 있다.

정자 서편에 숭정(숭정) 3 신유 (신유 1801년) 4월 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사명대(思明臺)와 동편에는 대명도 (大明洞) 비석이 각각 세워져 있다. 그리고 창석 이준, 표은 김시온, 석계 이시명, 석문 정영방 선생의 음각 시판(詩板)이 정자 벽면에 게시되어 있고 취수당일고(醉睡堂逸稿)2권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