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매룡리 고분군’은 6세기 중엽 이래로 신라가 한강 유역을 진출하는 과정에서 신라 영역에 편입된 여주 지역에 조성한 대규모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여주시에서 동남쪽으로 3㎞ 가량 떨어진 황학산(해발 175.3m)의 북쪽 능선이 매룡리를 지나 남한강 변의 상동까지 이어지는 해발 80m 내외의 능선과 동으로 뻗은 가지 능선 일대에 분포한다. 지형과 고분 밀집도에 따라 크게 5개 지역에 모두 200여기 이상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지만, 본래 하나의 큰 고분군에 포함된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석실과 석곽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네 벽은 깬 돌로 축조하였다.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널길(羨道)은 경사면 아래쪽에 있고 바깥 부분을 깬 돌로 폐쇄하였다. 무덤 바닥에는 대부분 작은 깬돌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하였으며, 횡혈식석실은 높은 시상(屍床)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석침(石枕)이 있는 고분도 일부 있다. 횡혈식과 횡구식 무덤은 대부분 추가장의 흔적이 확인된다. 대부분의 무덤 안에서는 소량의 신라 또는 통일신라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대체로 6세기 후반 이후부터 7세기 중후반대에 해당되어 이 고분군이 장기간에 걸쳐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분군은 중부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라 고분군으로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과 그에 따른 점령지역 통치방식을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