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보살상이다. 경기도에서 흔하지 않은 경주 불석(沸石)으로 제작했으며, 표면에는 금을 입혔다. 양팔을 몸에 붙여 신체를 하나의 덩어리처럼 표현하여 시대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불석은 경상북도 경주에서 산출되는 돌로 무른 특성으로 인해 조각하기가 용이하다. 17세기 경부터 불상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양주 석굴암 석조 지방보살 좌상’은 높이 48cm의 아담한 불상으로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상체에 비해 무릎이 상당히 높아 비례가 조화롭지 않다. 오른손은 가볍게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다리 중앙에 놓고 손바닥에 보배 구슬을 받들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으며 양 어깨에는 두건 자락이 가지런히 늘어져 있다. 네모지고 넓적한 얼굴에는 가늘게 뜬 작은 눈이 나란히 새겨지고, 두툼한 코, 약간 큰 입에 진지한 인상의 상이다. 몸에 비해 큰 얼굴을 가진 작달막한 신체비례, 양팔을 몸에 붙여 단순화한 자세와 평면적인 신체 표현, 사각의 얼굴에 간략하고 단순화된 세부와 옷자락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의 조각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에 의하면 이 보살상은 1873년 이씨진명행(李氏進明行)이 발원하여 한봉창엽(漢峰瑲曄)과 금곡영환(金谷永煥)이 나한상과 함께 제작하였다고 한다.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은 19세기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佛畫僧; 불화를 그리거나 불상을 제작하던 승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