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까지 417년간 양주목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던 곳이다. 1506년에 고주(高州) 지역에서 복구되었다가, 불곡산(佛谷山) 남쪽 유양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양주 관아지에 대한 관련 자료[경기읍지(京畿邑誌),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 등]를 보면 객사·형옥·읍창·진창·군기고·화약고·관청 등 31개의 시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 때 양주가 의정부로 이전하면서 폐허가 되어 관아의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양주 ‘목(牧)’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 단위로 볼 때 관아의 규모가 매우 컷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1996년 양주 관아지 일대가 시범 문화마을로 지정됨에 따라, 원골 문화마을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복원된 동헌 1동과 마당 한쪽에 양주목사를 지낸 관리들의 송덕비(頌德碑;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비) 20여 기를 세웠다. 또한 양주 관아지에 대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된 이후, 현재의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