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려문은 조선 중엽의 충신 양대박과 그의 아들을 추모하여 1796년에 세운 정려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서 전면은 8각으로 치석한 돌기둥을 사용하였는데, 기둥의 높이는 180cm 정도이다. 정려각의 네 면은 홍살로 꾸며져 있으며, 정면에 “부자충의문(父子忠義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내부에는 양대박 부자가 행한 충절의 내용을 기록한 1기의 비석과 3점의 현판이 있는데 비석의 크기는 141×55×25cm 정도이다.
양대박은 임진왜란(1592년) 때 남원에서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운암전투에서 왜병을 격파하였고 그의 아들 경우(慶遇)는 군량미를 모아 명나라 군대에 제공하였다.
이 정려문은 전면에 팔각으로 다듬은 돌기둥을 세운 것이 특이하며 공포의 형태나 화반(花盤)의 모습, 전체 외관은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