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1538∼1593)의 재사로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재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진 김성일의 비석에 적힌 연도가 인조 12년(1634)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보다 늦은 1700년대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김성일의 묘가 있는 산아래에 자리잡은 'ㅁ'자형 집으로 앞면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앞면 아래에는 광, 대문간, 외양간이 있으며, 위에는 누마루를 만들었다. 누는 제사 후 음식이나 술을 마시는 자리로 사용하였고, 몸채는 제사에 쓰이는 음식이나 재료를 장만하는데 쓰였다.
안채는 뒤쪽의 경사지를 이용해서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누마루 바닥보다 안마루의 바닥이 높다. 누 아래의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청이 있으며, 대청 왼쪽으로 안방이 있는데 뒷방을 통해서 대청으로 직접 출입할 수 있다. 오른쪽에는 2칸의 윗방과 마루방이 있고, 사랑방 2칸이 배열되어 있다. 앞채의 누마루는 정면과 왼쪽 옆면이 벽이며, 각 칸마다 중앙에 문이 있다. 또한 안대청에서 누마루까지는 난간을 세운 쪽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전면에 누다락이 있는 'ㅁ'자형 재사건물의 일반적인 형식을 보이고 있으나 안대청을 누마루보다 더 높게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부분적인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 후기 재사건축의 예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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