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35년(1759)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이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라고 새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의 일이 있을 때 궁궐을 향하여 절을 했다고 한다. 또한 새로 부임한 수령은 반드시 이곳에서 가례를 올렸으며, 중앙의 관리가 이 고을에 찾아 왔을 땐 이곳에서 머물렀다. 광무 9년(1905)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는 면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켜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정당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안의 바닥은 벽돌을 깔고 궐패를 안치하고 있다. 동대청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