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천군 남산 정상부를 둘러 쌓은 산성으로, 가로·세로 30∼40㎝ 크기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둘레 620m의 성은 폭 2.6m의 남문터와 폭 2.5m의 서문터가 확인되었으며 성안에는 6∼9m의 통로가 성벽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 현재 성벽은 남쪽과 북쪽에 남아있고, 벽이 붕괴된 지점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을 통해 삼국시대에도 이미 주거지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석축의 둘레가 1,545척이고 성안에는 우물이 1개있었으며, 세종 때 지세가 좋지 못하여 읍성을 옮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이곳이 세종 때까지는 산성이나 읍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주위를 조망할 수 있고 서해의 움직임과 금강 입구를 감시할 수 있어, 백제 때부터 변방을 지키는 요충지역였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