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장소이다.
최치원은 통일신라 후기의 학자로, 12세 되던 경문왕 8년(868)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에 과거급제 한 후 벼슬길에 올랐다. 헌강왕 11년(885)에 귀국하여 진성여왕에게 시무10조(時務十條)를 올리는 등,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노년에는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에 은둔하며 지내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생을 마쳤다.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한 그는 많은 저서와 비문을 남겼는데, 특히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은 신라화랑도를 설명해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영정각, 상서장, 추모문 등이 건립되어 있고, 조선 고종 때 건립된 비가 남아 있다. 지금은 최치원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