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산 이만윤 공이 세운 집으로 서울의 창덕궁을 모방하여 조선 고종 때 지었다고 전한다. 원래는 99칸 규모의 큰 집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뒤 50칸 정도만 남아 있다.
크게 본채, 사랑채, 행랑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ㅁ자형 본채 왼쪽에 사랑채가 있고 본채와 사랑채 사이에 행랑채가 자리잡고 있다. 굴뚝은 본채 뒤로 벽돌을 막아 모든 아궁이의 연기가 굴뚝 하나로 빠지도록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조선 후기 주택으로 규모가 크고 구조가 특이해 좋은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