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국사는 신라 말 보조 체징(普照 體澄)이 847년(신라 문서왕9) 창건하여 처음에는 법흥사라고 했다. 같은 해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굴산가(범일국사 창건)가 창건되기도 했으며 이후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물렀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서 승병이 많이 나와 나라를 구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므로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하고 했다. 부속 암자로는 안정암(安靜庵)이 있다. 이처럼 창건과 유래 등으로 보아 문화유산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에 비해 국가유산은 그리 많지 않다. 혜국사 초입부분에 있는 부도군과 대웅전에 있는 목조삼존불좌상이 대표 국가유산이라 할 수 있다.
삼존불의 복장을 조사한 결과 좌협시보살상에서 조상발원문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이 삼존상은 수화승 김문에 의하여 조성되어 강희 23년(1684)에 금학사에 안치했던 불상으로 판명되었다.
목조삼존불좌상은 중앙의 본존과 좌우 협시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본존은 하품중생인을 맺었으며 오른발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한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좌우협시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보다 그 규모가 크다. 머리는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데 불상 높이의 1/3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다. 어깨의 폭이 머리에 비해 좁기때문에 약간 왜소한 인상이다. 하반신은 상반신보다는 폭이 넓고, 무릎에서 엉덩이에 이르는 안길이도 길기때문에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좌우의 협시보살상도 본존과 그 형식이 거의 유사하다.
좌우 협시보살 모두 결가부좌한 자세이다. 화관에는 장식적 장엄이 세밀하고 다양하다. 두상의 머리는 상투를 높이 메고 있으며 그 옆 양쪽 어깨로 머리카락을 꼬아서 두 가닥으로 내리고 있는데 머릿결을 살려서 매우 섬세하다. 특히 좌협시 관음상은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데 그 형태는 율동적이며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