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부 관아에서 세워 관리하던 곳으로 명사와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정확한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465년(세조 11)에 전라 관찰사를 역임한 성임(成任)이 남긴 시(詩)가 있는 것으로 보아, 1465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 1592년(선조 25)에 왜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현감인 임환(林潁)에 의해 복원이 착수되어 후임 현감인 남복시(南復始)에 의해 완공되었다. 이후로도 1646년(인조 24), 1678년(숙종 4), 1729년(영조 5), 1783년(정조 7)에 보수되거나 중수되었다.
무주부 관아에서 관리하던 한풍루는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이후에는 불교 포교당과 무주 보통학교 공작실 등으로 사용되다가 안국사(安國寺)에서 불하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그 뒤에는 일본인 우수이이또[簿井誠]가 매입하였다가 1936년에 충청북도 영동군의 이명주(李命周)에게 팔았다. 이에 따라 한풍루는 뜯겨져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금강 변으로 옮겨졌으며 ‘한풍루’ 대신 ‘금호루(錦湖樓)’라는 현액이 걸리게 되었다. 1960년대 접어들어 한풍루 복구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한풍루 복구 추진 위원회는 1971년 3월 24일 한풍루를 매입하여 같은 해 11월 15일 본디 자리하였던 곳의 맞은편인 현재의 지남 공원 내 입구 부분으로 이건하였다.
2층의 누각으로 1층은 정면 3칸, 측면 4칸,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이익공(二翼工)의 팔작(八作) 형태이다. 건물의 연면적은 154.9㎡ 내외이다.
무주 한풍루는 호남에서 전주 한벽당, 남원 광한루와 함께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누각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