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양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선정인으로 중앙에 화불이 새겨진 보관을 착용하고 있으며, 법의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 대의에 승각기와 편삼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착의법을 보여준다. 머리는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으며 보발(寶髮)이 귀를 가로질러 어깨에서 세 가닥으로 나뉘며, 전반적으로 개금이 되어 있다.
불상 하부에 폭 20.5×14cm, 깊이 24.5cm 크기의 복장공이 있다. 복장공에서 조성발원문 1매와 중수발원문 1매, 후령통 1개, 분철된 ?법화경? 2매가 복장물로 발견되었으나 현재 중수발원 문은 도난당한 상태이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석조관음보살좌상은 1670년 조성되었으며 1733년 진관사에서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승호(勝浩)가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승호는 불석(沸石, zeolite)을 이용해 17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으로 1640년부터 1688년까지 불상 조성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승호가 수화승이 되어 조성한 첫 번째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발원문을 통해 원봉안처를 추정할 수 있는데 발원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발원문에 찍힌 다라니를 분석하면 이 불상의 원봉안처가 대구와 칠곡 접경지역의 사찰로 추정된다.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을 조각한 승호는 1655년부터 1678년간 기록의 공백이 보이는데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공백기에 승호의 활약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불상이다. 또한 복장물을 통해 구체적인 조성시기와 중수시기를 파악할 수 있으며 원 봉안처를 추정할 수 있다. 이밖에 도선사 석조관음보살좌상은 불상의 이운 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문화유산적 가치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