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은(大隱) 변안렬(邊安烈, 1334~1390)은 원(元)나라 출신 무장(武將)으로 본관이 황주(黃州)이며, 1351년에 공민왕(恭愍王)을 따라 고려로 왔다. 공민왕은 변안렬에게 판추밀부사 원개(元顗)의 딸과 혼인을 주선하고, 본관을 원주(原州)로 바꾸게 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변안렬은 원주변씨의 시조가 되었다. ‘변안렬 묘’는 양주(楊州) 주엽산(注葉山)에 있었는데 인근에 조선 세조(世祖) 광릉(光陵)이 조영되면서 현재 위치인 풍양(豊壤) 오리동(吾利洞)으로 옮겼다. 이후 변안렬 묘소가 실전되었다가 다시 찾은 뒤에 1571년 묘표(墓表)를 건립했다.
변안렬 묘표는 운수방부(雲首方趺; 구름이 조각된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이며, 6대 외손(外孫) 박승임(朴承任)이 글을 짓고, 7대 외손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이 썼다. 운수(雲首) 앞면에는 구름과 달,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가 조각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구름과 태양, 태양 속의 삼족오(三足烏)가 조각되어 있다. 이 묘표는 전체 높이가 255cm이며, 신도비나 묘갈처럼 두전(頭篆; 비석 머리에 쓴 전서)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두전과 비제(碑題)에 ‘묘표(墓表)’라고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