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암강익문교지

당암강익문교지
종목 문화유산자료 (2007년 06월 28일 지정)
분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관부문서 / 첩관통보류
시대 조선시대(선조-인조)
소유 합***
관리 합***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소개

강익문(1568∼1648)의 자는 군우(君遇), 호가 당암(戇庵)이다. 영의정 내암 정인홍(來庵 鄭仁弘)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동문들과 함께 내암 휘하에서 의병투쟁을 했다. 광해군 시대에 정언·지평·장령 등을 역임했고 교산 허균과 친했다. 1623년 계해정변(인조반정) 후 정인홍의 문인이라고 하여 원찬(遠竄)됐다. 1631년(인조9) 정인홍의 앞잡이라고 하여 사판(仕版)에서 삭제되고 의금부에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다. 아들 강대수도 정인홍의 도움으로 정언에 임명되었는데, 갑인봉사소를 올린 정온(鄭蘊)을 구하려다가 홍천에 유배되기도 했다. 문경호의 역양집 사실략(事實略)에 따르면, 계해정변 후 강익문은 설학 이대기처럼 ‘정인홍’을 ‘상공(相公)’이라고 존칭했다. 합천 임북의 삼현사(三賢祠)에 제향되어 있다.

당암 강익문의 교지는 백패·홍패 및 예조참판·예조판서 증직 교지의 4장이다.

1) 백패 : 幼學 강익문이 만력 17년(1589) 4월에 3등 제13인으로 진사에 입격한 것을 증명하는 문서. 가로 40cm, 세로 102cm의 楮紙에 묵서되어 있음.

2) 홍패 : 진사 강익문이 만력 34년(1606) 10월 13일에 병과 제9인으로 문과에 급제하였음을 증명하는 문서. 가로 54cm, 세로 89cm의 저지에 묵서되어 있음.

3) 증직 교지 2매 : 순치 5년(1648) 5월 19일과 29일에, 영국원종공신 일등에 책록된 강대수의 아버지이므로 경국대전에 의거하여 강익문에게 관작(官爵)을 추증한다는 내용의 교지다. 2매 공히 86×61cm 크기의 저지에 묵서되어 있음.

당암 강익문과 그의 아들 한사 강대수는 남명학파 구성원으로서는 물론 내암 정인홍의 문인으로서 정계와 지방에서 공히 그 역할이 괄목할 만하였으며, 이와 관계되는 강익문의 백패·홍패 및 증직 교지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