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이후 국민의 계몽과 실력 양성을 통한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학회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대한자강회-대한협회처럼 전국적인 것도 있었고, 주로 서울에 와 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이 결성한 학회도 있었다. 이들 학회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 바로 학회지였다. 학회지 지면 대부분은 근대지식의 소개와 약간의 정치적 논설로 채워졌다. 주요 인사들은 여러 학회 회원으로 중복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이들 학회지의 원고 투고와 구독은 비단 학회 회원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으므로, 당시 학회지의 영향력은 개별 학회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서우(西友)』 : 관서지방 즉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서우학회의 잡지다. 1906년 12월에 창간되어 1908년 1월 통권 14호로 종간되었다. 국판 50면 내외이고 값은 10전이었다. 1908년 1월에 서우학회가 관북 지방(함경도) 출신들이 조직한 한북학회와 통합해서 ‘서북학회’가 되었다. 서북학회는 『서우』의 지령을 이어서 1908년 5월까지 『서우』 15~17호를 발행하고, 1908년 6월부터 잡지 제호를 『서북학회월보』로 바꾸어 지령 1호부터 1910년 7월까지 통권 25호를 발행했다. 남산도서관에는 서우학회가 발행한 『서우』 통권 14호 중 제9호를 제외한 전권이 소장되어 있다.
『기호흥학회월보(畿湖興學會月報)』 : 서우학회의 『서우』 이후 1908년에는 호남학회의 『호남학보』, 경기・충청도 출신 지식인들의 『기호흥학회월보』가 잇달아 창간되었다. 1908년 1월 창립된 기호흥학회가 추구한 ‘흥학(興學)’은 비단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식자층과 민중까지 포함하는 전인구의 계몽이었다. 회원이 8백 명이 넘는 큰 학회였고, 그해 8월부터 간행된 『기호흥학회월보』의 발행인은 이규동(金奎東), 편집인은 이해조(李海朝)였다. 1909년 들어 학회지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강화되는 가운데 『기호흥학회월보』는 1909년 7월까지 통권 12호를 발행했다. 남산도서관에는 그 중 창간호부터 제8호까지와 제12호, 모두 9권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