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졸재 이산두(1680~1772)는 1767년(영조 43) 88세에 노인직으로 지중추(知中樞)에 가자(加資)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영조는 1769년(영조 45) 화공을 보내 이산두의 초상을 그려오게 명하였다. 영조는 초상을 열람한 뒤 2건을 모사하고 원본은 이산두의 집에 돌려주었다. 이산두의 집안에 돌려보내진 영정은 1769년 4월과 5월 사이에 제작된 것이며 여기에 영조와 정조의 어필이 추가되었다.
2점의 이산두 영정은 烏紗帽(조사모)를 쓰고 쌍학흉배가 달린 단령을 입은 채 손을 모은 좌안 7분면의 반신상으로, 두 본 모두 18세기 후반의 초상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훼손이 심한 영정(세로 38㎝, 가로 31.2㎝)은 그림의 내용과 특징을 면밀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 정도가 심하다. 또 하나의 영정(세로 66㎝, 가로 37.2㎝)은 1769년 영조의 어람(御覽)을 거친 영정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와 멀지 않은 시기에 제작된 모사본(模寫本)으로 생각된다. 이 영정은 18세기 후반의 초상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영정의 제작 유래에 대한 문헌기록이 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