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의 칠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盆城裴氏 受貫祖인 분성군 배원룡의 묘 인근에 건축된 재각이다. 배씨의 始祖, 中始祖, 受貫祖 세분 을 봉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분성배씨 수관조인 분성군은 諱가 元龍이며, 고려때 병부상서 겸 도원수에 오른 인물이다. 현 분성배씨의 파조로 그에 의해 관향이 분성으로 되었다. 1759년(英祖 己卯)에 간행한 『盆城世譜』에 “金海七山宮谷而”라 한 것으로 보아 18세기 중엽 이전에 칠산재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에도 1764(甲申)에 宗人들이 모여 宗會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901년 1월에 작성된 “김해시청 재산대장 내역서”에 칠산재가 배씨 문중 재실(경남 김해시 화목5동 1334번지)로 등재되어 있다.1900년대 이후 수차례 걸쳐 중수되었으며 수리내용을 살펴보면, 1907년과 1958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현재의 모습은 1958년 대대적으로 중수한 이후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칠산재는 근대기에 건축된 盆城裴氏 受貫祖인 盆城君 裴元龍의 墓 인근에 건축된 재실로, 묘와 재실의 배치관계를 잘 보여주는 조선후기 유교건축의 역사적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