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도동서원은 1771년에 건립된 연안이씨 문중의 현조 5명을 배양한 문중서원으로 남인과 노론의 당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중의식으로 극복한 흔치않은 사례이다. 1918년 명륜당 중수를 주도한 이경균은 1919년 파리장서사건의 김천 유림대표로 서명한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도동서원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알려주는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