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인조 15) 1월에 전라병사 김준룡(金俊龍, 1586~1642)이 수원 광교산에서 청나라 군사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고자 암반에 비석 모양을 다듬어 만들고 그 안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중앙에 크게 새긴 “충양공”은 김준룡 시호이며 “전승지”는 전투에서 승리한 장소를 말한다. 그리고 작은 글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준룡이 임금을 위해 호남 병사를 이끌고 광교산에 이르렀다가 청나라 대장 3명을 죽였다는 내용이다. 이때의 임금은 남한산성에 피난 가 있던 인조이며 전투 중에 사살된 청나라 대장 중의 한 명이 바로 청태조 누르하치의 사위인 백양고라(白羊高羅)이다.
광교산 전투는 병자호란 때 조선군이 이룬 최대의 승전이었다. 당시 남한산성은 청나라 군사에게 포위된 지 오래고 안팎이 막히어 단절되었는데 광교산 전투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안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