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김우형(金宇亨, 1616~1694)이 1687년(숙종 13)에 쓴 것이다. 김우형의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자는 도상(道常)이며 호는 기오재(寄傲齋) 또는 옥은거사(玉隱居士)이다. 글씨에 능하였고 특히 예서(隷書)를 잘 써서 여러 번 왕실의 보책(寶冊)을 썼다.
서첩 앞표지에 ‘寄傲齋戱墨(기오재희묵)’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으며, 글자 그대로 기오재가 즐거이 쓴 글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첩은 총 36장이다. 두보(杜甫), 왕유(王維) 등 중국 당나라 유명 시인의 시를 송설체(松雪體) 서풍(書風)의 행서와 초서로 표현하였다. 또한 이 서첩에는 김우형의 별호, 관향, 고향 지명 등을 새긴 인장 15과가 여러 군데 선명하게 찍혀 있어서 17세기 인장(印章) 연구 자료로도 주목된다. 본문 글씨 앞뒤로 그가 별도로 쓴 글에는 ‘1687년 5월 하순에 쓰기 시작하여 그해 8월 하순에 삼절헌(三節軒)에서 마쳤다’고 하였다. 삼절헌은 개성유수부 관아의 건물 이름이다. 이를 통해 이 서첩의 글씨는 그가 개성유수로 재임하던 시기(1687.3~1689.1)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김우형의 기오재희묵은 필사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17세기 명필의 작품이며, 서예사를 보충할 수 있는 필적으로서 15~16세기 이래 송설체의 전통을 이은 사례로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