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다.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계휘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광산 김씨의 유적이 많이 모여 있는 고정리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김계휘 선생은 사계 김장생의 아버지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문장을 짓는 재주가 남달랐다. 명종 4년(154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의 교리에 임명된 후 사관을 거쳐 이조좌랑에 이르렀다. 한때 파직을 당하여 고향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가 다시 재등용되어 이조정랑이 되었다. 명종 21년(1566) 문과 중시에 급제하여 동부승지, 대사헌이 되었으며 예조참판에 올라 경연관이 되었다. 선조 15년(1582)에 생을 마치었으며, 이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비는 조각이 있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조선 중기의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비몸에는 4면에 글씨를 새겼으나 많이 닳아서 알아보기가 힘들다. 머릿돌의 앞뒷면에는 각각 두 마리씩의 용들이 여의주를 물고 다투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선조 37년(1604)에 세운 비로, 간성군수 최립이 비문을 짓고, 손자인 김집이 글씨를 썼다. 원래는 마을 안에 세웠으나 마을입구로 옮기어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