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조가 명릉(숙종의 묘:현재 사적)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인 영조의 옛 일을 회상하면서 친히 글을 짓고 세운 비이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옆면에서 볼때 지붕선이 여덞팔(八)자와 비슷한 팔작지붕을 모방한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영조가 왕자인 연잉군으로 있을 때 부왕인 숙종의 탄신일을 맞아 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금암발참(黔巖撥站)에서 쉬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후 덕수천(창릉천)을 건너가는 소도둑을 잡았다는 말에 참장(站將)을 불러놓고 “필시 흉년에 춥고 배가 고파 도둑질을 했을 것이니 선처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튿날 새벽에 궁궐로 돌아가니 세제(世弟)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이 사건은 영조가 50년간 선정을 베푸는 징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당시 이곳은 의주로 가는 역의 건물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 역사 건물들은 없어지고 비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