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진의 묘역

권이진의 묘역
종목 시도기념물 (2012년 04월 27일 지정)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시대 조선 후기
소유 안동권씨유회당공파
관리 권일원
소재지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산 6

소개

권이진의 묘는 정생동에서 금산군 복수면 백암리로 넘어가는 길의 정상인 말구리재 아래, 중구 어남동 산6번지에 있다. 묘소는 1735년(영조 11) 1월 26일에 조성하였다.

권이진의 자字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시호(諡號)는 공민(恭敏)이다. 조선 중기의 예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권득기의 증손이고, 송시열의 외손이다. 따라서 권이진은 가학과 우암학 및 윤증의 무실학(務實學) 등을 함께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권이진은 문과에 급제 후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다. 특히 호조판서로 국가재정 안정에 기여해 조선 최고의 호조판서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권이진의 경륜에 대해 성호 이익은 묘지명에서 “몸을 닦아 덕을 세우고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 인물로 평했다. 권이진의 저서로는 「유회당집(有懷堂集)」이 있다.

묘소의 매장 형태는 전주이씨와 합장묘(合葬墓)이고,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분묘의 외형은 유돌분(乳突墳)이다. 봉분의 하단에는 가로 147~114㎝, 높이 40~43㎝ 크기의 둘레석 14개를 설치했다. 둘레석의 하단부대석는 6~8㎝ 정도가 앞으로 돌출되어 있어 바닥면을 넓게 지지하도록 하였다. 묘역의 석물로는 신도비, 묘비, 문인석, 상석, 망주석이 있다.

묘비의 비문은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이 찬술했고, 글씨는 담운(澹雲) 조명교(曹命敎)가 썼으며, 성호(星湖) 이익(李瀷)이 지문(誌文)을 찬술했다. 문인석의 높이 170㎝, 전면폭 54㎝, 측면 두께 50cm이다. 서쪽의 문인석은 높이 161㎝, 전면폭 59㎝, 두께 49㎝이다. 형식은 양관을 쓴 금관조복형으로 폐슬을 늘어뜨리었다. 특히 금관의 경우 중앙 부분에 직선의 양梁 대신 가운데에서 ‘V’자로 대칭되며 구불구불한 구름 형상을 새겨 넣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동안이다.

신도비는 재실인 귀후재 전면 앞마당에 있다. 비신은 166×62×45㎝(높이×전면폭×두께)이다. 신도비의 비문은 정범조(丁範祖)가 찬술했고, 강시영(姜時永)이 글씨를 썼으며, 두전(頭篆)은 6세손 권영수(權永秀)가 썼다. 권이진의 묘는 조선 후기 18세기 사대부 무덤의 규모와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