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서당은 조선 후기에 세운 서당이다. 관원들의 자제가 주로 배우는 곳으로 ‘관서당’이라고 불렀다. 남성재는 남원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서당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은 가운데 마루를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방이 있는 배치로서, 마루는 앞면 2칸·옆면 2칸으로 모두 4칸 규모이다. 현재 서쪽방은 앞뒤 2칸을 통칸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쪽방 앞에는 마루를 깔아 툇마루를 구성하고 뒷벽에는 벽장을 달았다.
성 남쪽에 있어 ‘성남재’로 불리다가 광복 후에 남성재로 이름을 바꾸었다.
광복 후까지 서당으로 있었는데, 남성재와 같이 향교와 서원 외에 서당이 현존하는 예는 드문 경우로 그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