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신라시대의 지극한 효자인 손순(孫順)의 유허지이다. 이 곳에 조선말기 학자인 허전(許傳)이 찬술한 비문을 새긴 유허비(遺墟碑)가 있었다고 전한다.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의 사람인 손순의 효행은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손순매아(孫順埋兒)편에 따르면, “모량리(牟梁里)의 손순과 그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음식을 빼앗아 먹는 아들을 땅에 묻기로 하고, 취산(醉山)으로 들어가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石鐘)을 하나 얻었다 이에 하늘의 뜻이라 하고 아이를 묻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석종을 매달아 두들겼더니 그 소리가 왕궁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흥덕왕이 이 얘기를 듣고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어 효성을 칭찬 하였다. 나중에 손순은 예전에 살던 집을 희사하여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그 석종을 두었다고 한다. 그 후 진성여왕(眞聖女王) 때에 후백제의 포악한 도둑이 그 마을에 쳐들어와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