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릉 ====== | **이름** | 선정릉 | | **입장료** | 대인 1,000원, 외국인(만7세~64세) 1,000원, 지역주민 500원 | | **휴관일** | 월요일 | | **전화번호** | 02-568-1291 | | **홈페이지** | https://royal.khs.go.kr/ROYAL/main/index.do | | **소재지** | 서울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선릉정릉 | | **위치** | [[https://geohack.toolforge.org/geohack.php?params=37.5073677154051_N_127.047165945717_E_| 37.5073677154051° N 127.047165945717° E]] | | 37.5073677154051,127.047165945717,,,marker.png,선정릉 || ===== 소개 ===== ▷선릉(宣陵) 이야기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선릉은 1494년(성종 25)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95년(연산군 1) 광주 학당리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4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겼다. 이후 1530년(중종 25)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梓宮, 관)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여, 1593년(선조 26) 7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선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었는데, 성종의 능침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정현왕후의 능침 봉분에는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다. 그 외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은 두 능 모두 비슷한 형태이다.▷성종(成宗) 이야기성종(재세 : 1457년 음력 7월 30일 ~ 1494년 음력 12월 24일, 재위 : 1469년 음력 11월 28일 ~ 1494년 음력 12월 24일)은 왕으로 추존된 덕종(의경세자)과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의 둘째 아들로 1457년(세조 3) 경복궁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인 세조가 잠시 궁중에서 키웠는데, 성품이 작하고 서예와 서화에도 능하여 세조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1461년(세조 7) 잘산군(者乙山君*)에 봉해졌고, 1469년(예종 1) 작은 아버지 예종이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 정희왕후(세조의 왕비)의 명으로 13세의 나이로 경복궁 근정문에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7년 동안 받았으며, 1476년(성종 7) 친정(親政)을 하였다.재위기간 동안 세조 대부터 편찬하던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1485년(성종 16)에 반포하였고, 1492년(성종 23)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법제를 정비하였다. 또 국가 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등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선비(사림세력)들을 등용하여 기존 정치 세력인 훈구세력과 국정의 균형을 이루게 하였다. 이후 1494년(성종 25) 창덕궁 대조전에서 38세로 세상을 떠났다.* 잘산군(자을산군) : 『승정원일기』에 성종의 군호는 ‘자을산者乙山으로 쓰고 잘산으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기록이 있음▷정현왕후(貞顯王后) 이야기정현왕후 윤씨(재세 : 1462년 음력 6월 25일 ~ 1530년 음력 8월 22일)는 본관이 파평인 영원부원군 윤호와 연안부부인 전씨의 딸로 1462년(세조 8) 신창 관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윤창년(尹昌年)이다. 1473년(성종 4) 성종의 후궁이 되어 숙의(淑儀, 종2품)에 봉해지고, 1479년(성종 10) 연산군의 생모 윤씨가 폐위되자 1480년(성종 11) 왕비로 책봉되었다.정현왕후는 왕비가 된 후 폐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을 친아들처럼 키웠고, 연산군도 친어머니를 정현왕후로 알고 자랐다. 그러나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라는 것을 알고도 정현왕후에 대한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현왕후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자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때 연산군을 폐위하고 친아들 진성대군(중종)의 즉위를 허락하였다. 이후 1530년(중종 25) 경복궁 동궁 정침에서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tag>박물관 서울특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