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 곽훈 효자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19042311543800.jpg?400|청주 곽훈 효자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8년 08월 0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1581년 | | **소유** | 청주곽씨종중 | | **관리** | 청주시 | |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공원로 311 (오창읍) | ===== 소개 ===== 조선 중기의 효자인 곽훈郭壎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81년(선조 14)에 세운 비석이다. 곽훈은 청주곽씨로서 시조인 곽상郭尙의 20세손이고,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양청리 회암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곽훈의 아버지인 곽영형郭英衡은 군수 벼슬을 하였지만, 곽훈은 벼슬하지 않았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후 예조참판으로 증직되었다. 곽훈에 대해서는 일반 문헌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 그의 효행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곽훈은 집이 가난하였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고 어머니가 죽은 후 여막에서 지내는데 감천甘泉이 저절로 솟아 나왔고 미채美菜가 섞여 났으며 범과 벗이 되고 의승義僧이 와서 지켜 주었다고 한다.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가려 할 때 중도 범도 간곳이 없고 샘물도 또한 말라 버렸다. 이 사실을 지평 김충갑持平 金忠甲 등 많은 사람들이 선조에게 알려 정표旌表를 받게 되었다. 곽훈 효자비는 본래 옛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양청리 호암저수지의 안쪽 가장자리의 경작지에 있었던 것을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지금의 자리인 오창읍 호수공원 남동쪽에 옮겨 놓았다. 거친 화강암을 그대로 홈을 파서 비석을 세운 지대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 지대석을 만들었다. 비신은 고운 암질의 화강석으로 조성하였다. 비신 위에 덮은 덮개돌은 팔작지붕 형태로 밑면에 홈을 파서 비신 위에 꽂았는데 풍화가 심한 상태이다. 효자비의 규모는 비신이 52.5×112×18.5㎝이고, 덮개돌은 87×33×56㎝이다. 비 앞면에는 큰 글씨로 “孝子學生郭壎之里효자학생곽훈지리”라고 새겼으며, 뒷면에는 “字君應事在新增三綱行實 萬曆辛巳十月日立자군응사재신증삼강행실 만력신사시월일입”라고 새겨져 있어 건립연대가 1581년(선조 14)임을 알 수 있다. 글씨의 자획이 유려하고 크며, 파임이 깊 어 시원한 느낌이다. 덮개돌은 풍화가 심한 상태이지만, 이와는 달리 비신은 거의 손상이 없이 양호한 상태이다. 곽훈의 효행이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수록되어 있고,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효자비가 현재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