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 구룡사 삼전패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3042509372000.jpg?400|원주 구룡사 삼전패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20년 08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 기타 / 기타 | | **시대** | 조선시대 후기 (18세기 중엽) | | **소유** | 대한불교조계종구룡사 | | **관리** | 월정사 성보박물관 | |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로 176 (진부면, 월정사성보박물관) | ===== 소개 ===== 불교에서 사용한 패는 크게 불패와 전패로 나뉘는데 불패는 불 · 보살 등의 존상을 상징하는 의식구로, 사부대중이 신앙의 대상과 감응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로 인식되었다. 전패는 불상의 명호보다는 주상과 왕비 세자 등의 수명과 장수와 같은 왕실의 안녕을 축원하는 문구가 로 제작되어 삼전패로 명칭되었다. 일찍부터 불단에 올려지는 중요한 장엄 법구의 하나로 인석되어 오래전부터 조성되었지만 역시 남아있는 것은 조선후기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조선시대의 불전 내부에는 특정한 문구를 전면에 명시한 세워두는 형태의 패를 나무로 제작하여 봉안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이들은 대체로 좌대를 갖추고 문구가 적힌 장방형의 몸체와 구름 모양으로 조각된 타원형의 개부의 삼단으로 구성되며, 문구의 성격에 따라 불패와 전패 로 유형을 구분하여 사용하였음을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원주 구룡사 목패는 3위로 구성되어 각각에 주상전하수만세 · 왕비전하수제년 · 세자저 하수천추 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왕실의 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패를 전패라 하여, 주상 · 왕비 · 세자 삼전을 축원하는 삼전패로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전패를 불전 상단에 모시고 아침과 저녁으로 예를 올렸으며, 야외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는 불연으로 모셔 의식단에 올려져 예경과 공경의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특히 조선후기가 되면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면서 활발히 조성되어, 현재 91건 160점 정도에 이르는 많은 수량이 전래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원래 전패의 문구를 수정하여 다른 유형으로 바꾸어 사용하거나, 3위 가운데 일부가 망실된 사례가 많다. 그에 비해 원주 구룡사 목패의 경우 비록 왕비의 좌대가 일부 결실되기는 하였으나 3위 모두가 잘 남아있으며 음각으로 된 본래의 기원문도 그대로 확인된다는 점에서 전패의 원형을살필 수 있어 높이 평가된다. 원주 구룡사 목패는 몸체와 상부를 하나의 판재를 이용해 제작하고, 장엄 문양인 운룡과당초를 황색 선묘로만 표현하였다. 이는 18세기 불교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활동이 미약해지면서 역량이 점차 떨어져 조형과 기법이 단순화 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선묘만을 이용하여 문양의 생동감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이 18세기 중엽 당시에서도 기량이 뛰어난 승장의 주도하여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조형적 감각은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판재를 매끈하게 정돈하여 사용하였고, 대부분의 패가 뒷면을 장엄하지 않는 반면에 이 전패는 선묘로 연꽃을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도 많은 정성을 들여 조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원주 구룡사 목패는 삼전의 위계의 차이를 그 크기와 외형의 규모, 또한 문양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주상의 패를 다른 두 점보다 크게 제작하여 시각적인 차이를 두었으며, 상부의 운룡문양의 경우 주상의 패는 정면관으로 왕비와 세자는 중앙의 주상을 향하도록 측면관으로 표현하고 있어 3위로 구성되는 세자 · 주상 · 왕비의 삼전패였음이 확인된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