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흥사괘불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1488.jpg?400|운흥사괘불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1972년 02월 12일 지정) | | **분류** | | | **시대** | | | **소유** | | | **관리** | 운*** | | **소재지** |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377 (와룡리) | ===== 소개 ===== 운흥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대사가 6,000여 명의 승군을 훈련시켰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안치되어 있는 괘불 탱화는 길이 15.5m, 폭 9m 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괘불이란 규모가 큰 불화의 한 종류로, 큰 법회나 옥외 의식 때 쓰이는 걸개그림 형식의 불화를 이른다. 이 괘불은 조선 영조 6년(1730) 이연선사와 진천선사 등이 주관하여 의겸 등이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인도의 영취산에서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한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괘불의 전면에는 3존상이 있고 그 뒷편으로 2보살과 2구의 여래상을 배치해 놓았는데 그림의 크기에 비해 구도가 단조롭다. 주불은 석가이며 좌우에 서 있는 보살은 문수와 보현이다. 두 여래상은 관음보살과 세지보살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은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얼굴은 둥글면서도 양감이 풍부하다. 머리에는 꼭대기와 중간에 계주가 묘사되어 있는데, 꼭대기에 있는 계주에서 세 줄기의 빛이 뻗어나고 있다. 형식화된 이목구비는 작은 편에 속하며, 특히 눈이나 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게 그려진 입은 형식화되고 도식화되던 조선 후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뒷면에는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조대왕의 말씀이 적혀있고 1,000자에 달하는 괘불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괘불에는 왜적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삼천포항에서 세 번이나 배에 실었다가 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여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