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조어필벼루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2019010819561300.jpg?400|영조어필벼루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14년 07월 08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 **시대** | | | **소유** | 수원시 | | **관리** | 수원시 | |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매향동, 수원화성박물관) | ===== 소개 ===== 영조어필 벼루는 뒷면에 영조(1694~1776)가 71세 때 자신의 연표(年表)를 친히 짓고 써서 새긴 특별한 벼루다. 연표 내용은 가로 2칸, 세로 10칸으로 구획한 직사각형의 표 안에 매우 작은 글씨로 새겨 넣었는데,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이란 글자가 있어 영조가 직접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세로줄 1번째 칸에 “자성옹(自醒翁, 영조의 호)이 71세 망팔(望八)의 나이에 시력을 시험하는 연표(年表)를 쓰다”라는 글귀를 쓴 후 2~9번째 칸에는 영조가 태어난 갑술(甲戌, 1694)년 이후부터 여덟번째 갑(甲)자가 들어간 갑신(甲申, 1764)년을 맞아 자신의 일생을 10년 단위로 정리하면서 주요 행적들을 기록하였다. 마지막 칸에는 글을 짓고 쓴 시기를 적었다. 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해오는 벼루가 가끔 있지만 이처럼 왕과 관련된 명확한 기록을 가진 벼루는 매우 희귀하다. 명문도 왕이 아니면 새길 수 없는 내용이다. 더구나 왕의 글씨를 그대로 새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벼루는 약간 붉은 색을 띠며 어떤 무늬도 새기지 않은 소박한 것으로 평소 검약을 숭상하고 이를 실천했던 영조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규모는 가로 31.2㎝, 세로 49.8㎝이며 두께 4.5㎝, 무게 17.1㎏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