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잉군 초상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4877.jpg?400|연잉군 초상 }} || | **종목** | 보물 (2006년 12월 29일 지정) | | **분류** |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 | **시대** | 18세기초 | | **소유** | 국유 | | **관리** | [[대한민국: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 |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효자로 12,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국립고궁박물관) | ===== 소개 ===== <연잉군 초상>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 “初封延仍君古號養性軒”이라 적혀있어 이 본이 영조가 임금이 되기 이전에 제작된 延礽君 시절 圖寫本임을 알 수 있다. 紗帽, 白澤 胸背를 부착한 綠袍團領, 犀帶, 검은색 녹피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장관복차림에 공수자세로 앉아 있는 좌안8분면의 전신교의좌상이다.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1735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에 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慶基殿의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肅宗御眞圖寫에 主管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로 지정된 <강현 초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83×87㎝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