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요정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1775.jpg?400|양요정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97년 07월 18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 **시대** | | | **소유** | 해*** | | **관리** | 해***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490-1 | ===== 소개 ===== 조선 중엽 최응숙 선생이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성균진사 최응숙은 본관은 전주, 호는 양요, 시호는 충현이다. 문충공 최군옥을 시조로 하며, 위정공 최칠석을 중시조로 한다. 최칠석의 아들 최운이 전주에서 남원부 수지방(水旨坊)으로 이거해 8대를 세거했는데, 최칠석의 9세손인 양요당 최응숙이 임실 운암으로 처음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최응숙은 임진왜란 당시 성균진사로서 임금을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 3등에 책봉되었고, 후에 운암으로 낙향해 양요정을 짓고 소요했다. 양요(兩樂)라는 말은 맹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응숙 이래 12명의 진사를 배출했으며 많은 선비들이 시문으로 칭송했다. 풍류객 시문 14편이 정자에 걸려 있다. 1965년 섬진강 댐을 축조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현재의 요산공원 위로 옮겨 세웠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누정 가운데 1칸 규모의 방을 두었고, 주위는 툇마루를 놓았다. 정자 전체에 단청과 양요정 최응숙 선생이 임금을 호종하는 모습, 낙향하여 소요하는 모습 등을 그린 벽화가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