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절려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3265.jpg?400|쌍절려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0년 04월 1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조선 순조17년(1817) | | **소유** | 배*** | | **관리** | 배*** | |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585번지 | ===== 소개 ===== 임진왜란 때 젊은 나이로 전사한 배인길(1571∼1592)과 그 소식을 듣고 자결한 그의 부인인 월성 이씨의 충열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한 쌍의 정려문이다. 배인길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를 익혔으며 22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예안 현감인 신지제의 휘하에 들어가 용궁전투에 참전했는데 전투 중 전사하였다. 정려(旌閭)란 나라에서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에 세워 주던 문으로 배인길은 충신으로서, 그의 부인은 열녀로서 하사 받은 것이다. 보통 충효열이 따로 지정된 것이 일반적이나 이처럼 두 사람을 함께 인정하여 세운 쌍절려는 특이한 예가 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1817년 그들의 충열을 인정하여 나라에서 내린 ‘쌍정교지’와 ‘상량문’ 그리고 참판이었던 김희주가 쓴 글과 정려기 등이 남아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