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리대전서절요권1∼4 ====== | {{ ?400|성리대전서절요권1∼4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3년 08월 14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전적류 / 활자본 / 목활자본 | | **시대** | 조선 중종 33년(1538) | | **소유** | 청*** | | **관리** | 청*** | | **소재지**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청주고인쇄박물관 (운천동) | ===== 소개 ===== 성리대전(性理大全)은 명(明)나라의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들이 송(宋)나라 때의 성리학설(性理學說)에 원대성리학자(元代性理學者)의 학설(學說)까지 보태어 방대하게 집성(集成)한 거질(巨帙)의 전서(全書)이다. 이것이 세종조(世宗朝) 초(初) 우리나라에 사서(四書)·오경대전(五經大全)과 함께 수입된 이후 학자들의 필독서(必讀書)로 되어 왔으나 그 내용이 번다(繁多)하므로 중종(中宗)때의 학자 김정국(金正國)(1485∼1541)이 이를 요약하여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4권으로 성편(成編)하고 제명(題名)한 것이 ‘성리대전서절요(性理大全書節要)’이다. 그 인출(印出)은 김정국(金正國)이 중종(中宗) 33년(1538) 여름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의 명을 받고 부임(赴任), 도사(都事) 김회백(金晦伯)과 함께 금성(錦城)인 나주목(羅州牧)에 있던 목활자(木活字)를 기본으로 부족자(不足字)와 결자(缺字)를 새로 보충하여 그 해 가을에 400부를 간행한 것으로 권4의 말미에 김정국의 후서(後序)가 수록되어 있다. 이 절요(節要)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의 발발로 인해 거의 인몰(湮沒)되어 버린 중종조(中宗朝)의 지방관서(地方官暑) 목활자인본(木活字印本) 전질(全帙)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16세기전기(世紀前期)의 지방관서(地方官暑) 목활자(木活字)로서는 비교적(比較的) 잘 새겨진 해정(楷正)한 필서체자(筆書體字)이며, 인쇄(印刷)도 정교(精巧)한 편이다. 10항(行) 19자(字)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본문의 가운데는 ‘성리대전(性理大全)’의 판심제(版心題)와 장차(張次)가 새겨져 있다. 권1은 64장(張), 권2는 56장, 권3은 62장, 권4는 67장이다. 해제사유:보물 제1157-2호 성리대전서절요권1∼4 로 승격지정됨에 따라 해제됨.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