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사 겸 목사 이수일유애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1121315333300.JPG?400|병사 겸 목사 이수일유애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21년 10월 21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 **시대** | 초대 경상우병사 겸 목사 이수일의 유애비 | | **소유** | 국가유산청 | | **관리** | 진주시 | |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64 | ===== 소개 ===== 병사겸목사 이수일유애비는 이수일*이 임진왜란으로 2차례의 큰 전투를 겪어 폐허가 된 진주성을 보수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고을을 잘 다스려 준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진주민들이 병사겸목사 이수일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세운 빗돌이다. 비문은 병사겸목사로서 진주와 진주성을 잘 다스린 공적을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이 끝나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성으로 옮기고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진주목사를 겸직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사실을 비제(碑題)의 ‘병사겸목사’라는 관직명을 통해 증명하고 있어 조선중기 지방제도 연구 뿐 만 아니라 조선 중기의 비석양식을 연구하는데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비석은 이수일이 임기를 마친 다음해인 1606년에 세웠다. 빗글은 하수일**이 짓고, 조겸***이 글씨를 썼다. * 이수일(李守一, 1554~1632):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 시호는 충무(충무)이다. 1583년 무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우병사겸진주목사가 되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서 선무공신과 진무공신에 올랐고 계림군에 봉해져 형조판서에 올랐다. 사후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하수일(河受一, 1553~1612) : 호 송정, 37세에 사마시에 입격하고 선조24년(1591)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에 올랐다. 촉석루의 기문과 덕천서원 세심정기, 단성향교성전기, 수우당명을 지었다. 문집으로 송정집(松亭集)이 전한다. ***조겸(趙㻩, 1569~1652) 본관은 임천, 호는 봉강, 효행으로 참판직을 받았으며 창주 하증, 부사 성여신과 함께 진양지 편찬에 참여하였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