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시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54007.jpg?400|목포시사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76년 09월 3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역사사건 | | **시대** | | | **소유** | 목포시사 | | **관리** | 목포시사 | | **소재지** | 전남 목포시 유달로 165 (죽교동) | ===== 소개 ===== 시사(時社)는 뜻이 서로 통하는 선비들이 모여서 계절에 따라 자연을 노래하고 시를 읊던 모임이다. 목포시사는 1920년에 결성한 '유산시사(儒山詩社)' 에서 출발하였다. 유산시사의 창립은 무안 감리를 지낸 김성규가 주도하였고, 목포 유림들과 진도·강진 지역의 문인들이 참여하였다. 1933년에 현 시사 건물인 유산정(儒山亭)을 완공하였으며, 이때 무정 정만조가 「유산정상량문」을 지었다. 1961년에 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시사인 '보인시사(輔仁 詩社)' 와 통합하여 목포시사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날에 전해진다. 목포 시사는 전국 각처에서 200여명이 해마다 봄, 가을 2회에 걸쳐 백일장을 개최하여 한시(漢詩)의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 오는 유래 깊은 시사이다. 정만조는 고종 26년(1889)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의, 승지를 거쳐 내부참의, 규장각부제학 등을 지냈다. 광무년간 정변시 진도에 유배되어 10여년 간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이 당시 문학, 서예 등을 가르쳐 많은 인사를 배출하였으나 1907년 대한제국 고종의 강제 퇴위 이후 사면을 받아 유배지에서 복귀하여 조선총독부에 협조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1칸 반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시사에는 한말의 전적, 한시 현판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