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천동서원묘정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2244.jpg?400|나주천동서원묘정비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2000년 12월 29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조선시대 후기(1782) | | **소유** | 나주시 | | **관리** | 나주시 | | **소재지** | 전남 나주시 노안면 봉호길 21 (학산리) | ===== 소개 ===== 천동서원은 숙종28년(1702) 문간공 이민서를 배향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천동마을 들머리에 처음 지었다. 이민서의 본관은 전주, 호는 서하, 자는 이중이다. 글씨와 문장에 뛰어났던 조선 후기 문신으로 이조와 호조 참판벼슬을 지냈다. 나주의 서하사와 흥덕의 동산서원에서 제를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서하집》17권이다. 천동서원은 경종 4년(1724)에 1차 헐렸다가, 그 이듬해 영조 원년(1725) 사림들이 모여 상소하여 다시 지었다. 1차 보수 이후 30여년이 지난 영조 31년(1755) 문간공 이민서의 둘째 아들 이건명을, 정조1년(1777)에는 맏아들 이관명을 모셨다. 이후 1781년 1차 보수 했다. 이듬해 1782년 후손과 유림이 뜻을 모아 천동서원 묘정비를 세우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동서원묘정비는 옛 서원 터에 있다. 일명 '문간공서하선생묘비(文簡公西河先生墓碑)'라고도 한다. 비문은 서하 선생의 외손 홍문관제학 홍낙명이 짓고 춘추관사 서유린이 섰으며, 증손 성균관사 이연상이 새겼다. 이때 인근 유생들로서 나주 유사 나극동, 오혁원, 광주유사 기종의, 박사직이 참여했다. 비의 규모는 높이 222cm, 너비 97cm, 두께26cm 이다. 이 비는 조선후기 나주 지역 문중사우에 대한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비에 새겨진 천동서원에 대한 내력과 더불어 비석의 조각 수법이 뛰어나 당시 나주 지역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