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방경 묘지석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19062015385400.jpg?400|김방경 묘지석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10년 04월 05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지석 | | **시대** | | | **소유** | 대종회 | | **관리** | 한국국학진흥원 | | **소재지** | 경상북도 안동시 퇴계로 1997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 ===== 소개 ===== 이 묘지석의 주인공인 김방경(1212~1300)의 본관은 안동이며,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다. 1227년(고종 14) 삼한공신(三韓功臣) 김일긍(金日兢)의 음(蔭)으로 출사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는 동안 삼별초 토벌과 일본원정에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공으로 1295년(충렬왕 21)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의 관작과 식읍을 하사받았다. 1300년(충렬왕 26) 개성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언에 의해 예안서산(禮安西山)에 안장되었다. 이때 이전(李瑱)이 묘지명을 지었고, 충선왕(1308~1313) 재위기간 중 삼한벽상삼중대광선충협모정난정국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宣忠恊謀定難靖國功臣)으로 추증되고 충열(忠烈)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신도비가 왕명에 의해 건립되었다. 1300년에 이진이 지은 김방경의 묘지석은 근시재 김해(近始齋 金垓;1555~1593)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1594년에 발견되었지만, 김방경 묘소 부근에 다시 묻었다. 1970년대에 다시 묘지석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사진 촬영을 한 다음 다시 묻었고, 이묘지석은 김방경의 묘소에서 발견된 것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