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 봉암사 이여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folklore_material/2025021717530090.JPG?400|고흥 봉암사 이여재 }} || | **종목** | 시도민속문화유산 (2025년 02월 06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민간신앙 / 마을신앙 | | **시대** | 1905년 건립 | | **소유** | 김*** | | **관리** | 김*** | |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석봉리 1114 (가산2길 40-18) | ===== 소개 ===== 고흥 봉암사 이여재는 부재의 재사용을 통한 공간의 성격 및 구조를 변용한 뛰어난 결구기법이 확인되는 건축물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양 끝부분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전면에 대청보다 높은 누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러 일반적인 재실건축과는 다른 모습을 지녔다. 이 형태는 주로 고흥지역 재실 건축에서만 확인된다는 점에서도 높은 학술적가치 가치가 있다. 고흥 봉암사는 1826년에 건립된 사당으로 김녕김씨 고흥 입향조인 영돈령부사 김준(金遵, 1409~?)과 그의 증손 참판 김구룡(金九龍, 1454~1546), 증호조참의 박은춘(朴殷春) 그리고 병조참의 박응수(朴應秀) 등 네 명의 인물이 배향되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나, 1905년에 후손들인 김인석, 김두형, 김종현, 김용석 등의 노력으로 이여재가 재실로 먼저 건립되어 향사가 이어졌다. 이여재는 조선시대 선현 제향 공간인 사우의 강당 겸 재실로서 건물의 상량문을 통해 김준과 김구룡에 대한 행적, 봉암사의 훼철, 그리고 1905년 이여재의 건립과 관련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후손들인 김인석, 김두형, 김종현, 김용석이 힘을 모아 4칸 집을 옛터에 짓고 1년에 한 차례씩 제사를 지낼 곳으로 삼았다 기록이 전한다. 또한, 이여재에는 고문서와 족보 초고 등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어, 종중의 모임 장소 역할 외에도 족보 발행 등의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어 민속유산의 가치가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