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삼랑성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5201.jpg?400|강화 삼랑성 }} || | **종목** | 사적 (1964년 06월 1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시대** | 삼국시대 | | **소유** | 강화군 등 | | **관리** | 강화군 | |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산41번지 | ===== 소개 =====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며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이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이 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영조 15년(1739)에 성을 다시 쌓으면서 남문에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이곳은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삼랑성 → 강화 삼랑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tag>국가유산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