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
museums-_und_heimatverein_gifhorn_e._v
•
평택_서천사석조여래좌상
•
군위_남천고택
•
석남사마애여래입상
•
복천암수암화상탑
•
김녕리_등명대
•
묘법연화경_1988
•
효령대군영정
•
익재난고_권6_7
•
안국동윤보선가
대한민국:국가유산:합천_정인홍_묘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합천 정인홍 묘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2018103016160300.JPG?400|합천 정인홍 묘 }} || | **종목** | 시도기념물 (2018년 09월 2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 **시대** | | | **소유** | 서*** | | **관리** | 서*** | |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 ===== 소개 =====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 1536-1623)은 선조(宣祖) 초기에 유일(遺逸)로 출사하여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있을 때 곧은 명성을 크게 떨친 바 있고, 임진왜란 때는 남명학파의 리더로서 동문과 수하의 문인들을 대거 기의(起義)케 하여 경상우도 지역을 보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끝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뒤 선조(宣祖)의 지우를 입어 사헌부 대사헌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광해군(光海君)의 지우를 입어 1609년 광해군 원년부터 1623년 인조(仁祖)가 정권을 차지할 때까지 한 번도 현직에 나아가 업무를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사헌으로부터 영의정에 이르기까지의 고관(高官) 현직(顯職)을 왕이 거두어들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비록 인조반정 후 폐모살제(廢母殺弟)의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하고, 그 이후 약 300년 가까이 집권 세력들이 끊임없이 그의 못된 점을 드러내려 하였지만, 그의 꼿꼿한 선비정신에 바탕을 둔 언행과 그를 추종한 수많은 문인 집단이 해내었던 의병활동 등을 모두 가리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와서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광해군 시대의 의미와 정인홍의 정치적 역할 및 그 학자적 위상에 대해 의미있게 해석하고 있는 추세이다. 정인홍의 묘소는 적신으로 처형당했기 때문에 세상에 알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고종 때에 와서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고 하며, 그 앞에 세워진 석물 또한 모두 일제 강점기 이후에 조성된 것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합천_정인홍_묘.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47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