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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창덕궁_희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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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희정당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reasure/1613998.jpg?400|창덕궁 희정당 }} || | **종목** | 보물 (1985년 01월 08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 | **시대** | 조선 고종 4년(1867) | | **소유** | 국유 | | **관리** | 국가유산청 창덕궁관리소 | |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와룡동) | ===== 소개 ===== 희정당은 본래 침전으로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임금님의 집무실로 사용하였다. 건물을 지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연산군 2년(1496)에 숭문당이라는 건물이 소실되어 이를 다시 지으면서 이름을 희정당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몇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에 탄 것을 경복궁의 침전인 강녕전을 헐어다 1920년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11칸·옆면 4칸으로 한식건물에 서양식 실내장식을 하고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 9칸·옆면 3칸을 거실로 하고 주위는 복도로 사용하였다. 앞면 9칸 중 3칸은 응접실이며 서쪽은 회의실로 꾸미고, 동쪽은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었다. 응접실에는 김규진의 금강산총석정절경도,금강산 만물초승경도의 벽화가 걸려있다. 건물 앞쪽에는 전통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현관이 생겼고 자동차가 들어설 수 있게 설비되었다. 이는 마차나 자동차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채택된 서양식 구조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시대에 왕의 사무실과 외국 사신 등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면서 한식과 서양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시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창덕궁_희정당.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5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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