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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창계숭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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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계숭절사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59690.jpg?400|창계숭절사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89년 03월 18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 | **시대** | 1923 | | **소유** | 박*** | | **관리** | 박***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중구 대둔산로137번길 67 (안영동, 창계숭절사) | ===== 소개 ===== 창계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08∼1456)을 모신 곳이다. 박팽년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4년(세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1453년(단종 1) 우승지를 거쳐 형조참판이 되었으며 1455(세조 1)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는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심문 역시 조선 전기 문신으로 1436년(세종 18)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등 사육신이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1871년(고종 8)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본 구역은 사당(崇節祠:숭절사)과 강당(尙義堂:상의당), 동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사당인 숭절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획한 후 정면 1칸 통을 개방하여 전퇴(前退)를 만들었으며, 그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두 분의 위패를 각각 봉안하여 제향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 형태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창계숭절사.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0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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