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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의암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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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의암사적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1642314.jpg?400|진주의암사적비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00년 01월 31일 지정) | | **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 **시대** | 경종2년(1722년) | | **소유** | 진주시 | | **관리** | 진주시 | | **소재지** | 경남 진주시 본성동 500-8번지 | ===== 소개 ===== 의암사적비는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명암 정식(明庵 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경종 2년(1722)에 세웠다. 영조 16년(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의암사적비」에는 비각을 건립하여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 이 비는 아래의 의암(義巖,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과 마주하고 있어 의기 논개의 순국정신을 한층 더 흠모케 하고 있다. 이 비의 비문에는 “그 바위 홀로 섰고, 그 여인 우뚝 섰네. 여인은 이 바위가 아닌들 어찌 죽을 곳을 찾았고, 바위는 이 여인이 아닌들 어찌 의로운 소리 들으랴.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진주의암사적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48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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