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으로 건너뛰기
마이여행로그
사용자 도구
등록
로그인
사이트 도구
검색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등록
로그인
>
최근 바뀜
미디어 관리자
사이트맵
추적:
•
고암서원묘정비
•
삼계강사계안
•
공주동원리석탑
•
영동_황간향교
•
산청_법계사_삼층석탑
•
제주돌문화공원
•
부여금사리성당
•
창덕궁_인정전
•
김천_직지사_대웅전
•
박노계집판목
대한민국:국가유산:정창손묘역석물
이 문서는 읽기 전용입니다. 원본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정창손묘역석물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cultural_material/1660128.jpg?400|정창손묘역석물 }} || | **종목** | 문화유산자료 (1994년 04월 20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동래정씨충정공파종중 | | **관리** | 동래정씨충정공파종중 | | **소재지** | 경기 양평군 양서면 부용리 산37-1번지 | ===== 소개 ===== 조선 세조와 성종간의 문신인 정창손(鄭昌孫, 1420∼1487) 선생의 묘역이다. 정창손은 1455년(세조 1)에 좌익공신에 올랐다. 봉분은 부인 청주 정씨(淸州鄭氏)와 합장한 하나의 봉분이고 둘레석은 현대의 것이다.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 묘표가 2기 있는데, 1기는 정창손, 다른 1기는 청주 정씨의 묘표이다. 청주 정씨의 묘표는 하엽수방부형(荷葉首方趺形; 뒤집은 연잎을 장식한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연엽의 조각이 깊고 명확한 15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정창손 묘표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으로 16세기 전반기의 형태이다. 문석인은 총 2쌍인데, 모두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이다. 모두 기둥형의 단순한 신체에 평면적인 조각을 보인다.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원래 있던 것은 서거정이 찬한 것으로 1504년에 파손되었고, 그후 1623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비문은 한준겸이 서거정의 비문에 추서하여 찬술하고, 심열이 썼다. 그 외 장명등, 석양 등은 현대에 추가한 것이다. 이 묘역은 사육신과 단종복위, 갑자사화 등 여러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는 의미 깊은 무덤이다. 역사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묘역의 석물이 철거되고 개장되면서 다시 세워진 사연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정창손묘역석물.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4
저자
sh
문서 도구
문서 보기
이전 판
역링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