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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일동장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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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동장유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tangible_cult_prop/2023053014373003.png?400|일동장유가 }} || | **종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2023년 05월 25일 지정) | | **분류** | 유물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 | **관리**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죽전동, 단국대학교) | ===== 소개 ===== ∘ 「일동장유가」는 김인겸(金仁謙, 1702~1772)이 계미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뽑혀 한양을 출발, 당시 일본 덕천막부(德川幕府)의 정치중심지인 에도[江戶]를 다녀와 복명하는 영조 39년(1763) 8월 3일부터 영조 40년(1764) 7월 8일까지 전 과정의 사행 견문을 담은 국문 가사임 ∘ 1877년 12월에 필사를 마치고 1879년에 성책(成冊)한 것으로, 전체 필사본 2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음. 권1은 34장, 권2는 53장으로(겉표지 제외) 선장되어 있음. 연민 이가원 선생이 소장하고 있다가 1987년 6월 4일 단국대학교에 기증하여 현재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이하 ‘연민본 ’으로 통칭) ∘ 2책 모두 매면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 시작 첫 하단만 3단으로 되어 있다. 구수(句數)는 24구, 28구, 32구로 매면 일정치 않음. 또한 2책의 본문 시작인 2장부터 29장까지는 가로 6칸, 세로 4칸으로 반듯하게 줄을 그어 칸을 만들고 칸 안에 두 귀글(句文)씩 넣어서 매면 24구를 정확하게 지키고 있음. ∘ 본문 글씨는 일부 궁서체에 기반한 봉셔(편지글) 필의를 띄고 있으나, 대체로 유미하고 정제된 궁서체와 달리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흘림체로 19세기 중후반의 전형적인 민간서풍에 해당함. 서사자는 2~3인이 필사한 것으로 추정됨. ∘ 종이는 이면지를 활용하여 배면(背面)에 한자로 물목과 수량 등이 서사되어 있음. ∘ 권1 본문 시작 부분에 “일동장유가 제일 김인겸 소”이라고 하여 작자가 김인겸임을 밝혀주고 있으며 원표지 다음에 한 장의 여백을 둔 다음 본문이 시작되고 있으며 권2는 마지막 3면에 여백이 있음. ∘ 장편 가사이기에 별다른 목차는 없고, 다만 권1의 맨 앞에는 계미통신사행의 좌목(座目)이 있고 이어 날짜순으로 가사가 전개됨. 권2도 마지막까지 날짜순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체는 서사(序辭)→ 등정(登程)→ 목적지(目的地)→ 회정(回程)→ 결사(結辭)의 순차적 구조로 되어 있음 ∘ 「일동장유가」 전체 내용을 온전하게 구비한 이본으로는 가람 이병기 박사가 소장하고 있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가람본’이 있으나 본문의 누락이 있고 필사연대를 알 수 없으며 철자법, 지질, 먹색 등으로 보아 그 연대가 연민본에 비해 후대의 것으로 추정됨. ∘ 연민본과 가람본을 비교해 보면 두 책에는 서로 결락된 부분이 있는데 연민본에 있는 내용이 가람본에서 누락된 경우가 60句 정도 더 많고 서체 또한 가람본은 후대에 유려한 궁서체로 정돈되게 쓰여진 것과 달리 연민본은 19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민간서체로 당대 한글서사의 특징을 온전하게 보여주는 저본에 해당함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일동장유가.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49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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