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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이석용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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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용생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53649.jpg?400|이석용생가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97년 07월 18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탄생지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이*** | | **관리** | 이***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봉3길 56-3 (성수면, 이석용생가) | ===== 소개 ===== 호남창의동맹소 의병대장 이석용의 생가이며, 임실군 성수면 삼봉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1870년대에 지은 생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형적인 민가로 왼쪽부터 부엌, 마루와 방, 오른쪽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이석용(李錫庸, 1878~1914)이 태어나 25세 즈음 태평리로 이사하기 전인 1903년까지 살았다. 이석용(李錫庸, 1878~1914)은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三峰里)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 자는 경항(敬恒), 호는 정재(靜齋)이다. 1907년 8월 26일 집을 떠나 9월 12일 마이산 아래 용암에서 창의하여 호남창의동맹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석용 의진은 300여 명으로 시작하여 1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군율을 정비하고 친일 세력인 일진회와 자위단을 처단하며 진안, 임실, 장수, 남원, 정읍, 곡성, 함양, 구례 등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등지에서 1908년까지 부하 300여 명과 함께 1909년까지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이석용 의진은 1909년 9월 시작된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 활동이 어렵게 되자 의병을 해산하고 잠적했다. 그뒤1912년에는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을 조직하여 조선총독,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방화 등을 계획했다. 그러나 활동 자금을 마련하다가 동지의 밀고로 1913년 10월에 임실 경찰에 체포되어 전주지방재판소에서 사형 언도를 받았다. 선생은 ‘대한의 닭이나 개가 될지언정 원수 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며 당당하게 재판에 임했으며, 1914년 4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유해와 그와 함께한 28의사의 유해가 소충사에 봉안되어 있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이석용생가.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2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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