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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음성_권근_삼대_묘소_및_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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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9598.jpg?400|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80년 01월 09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 **시대** | 조선세종26(14440 | | **소유** | 안동권씨 종중 | | **관리** | 안동권씨 종중 | | **소재지** | 충북 음성군 생극면 능안로 377-15 (방축리) | ===== 소개 =====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양촌(陽村) 권근(1352∼1409)과 선생의 아들 권제, 손자 권람의 3대묘이다. 선생은 공민왕 17년(1368) 성균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공민왕(재위 1352∼1374)이 죽자 정몽주·정도전과 함께 배원친명(排元親明)을 주장하였고 창왕 2년(1389)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태조 7년(1398)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후에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주장하여 왕권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대제학을 거쳐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문장이 뛰어나『동국사략』등 조정의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다. 권제(1387∼1445)는 권근의 둘째 아들로 우찬성의 벼슬에 올랐고『고려사』편찬에 참여 했으며『용비어천가』를 지었다. 권람(1416∼1465)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학문이 뛰어났고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여러 차례 세조를 도와 공을 세운 덕으로 좌의정의 벼슬까지 올랐다. 3기의 묘앞에 모두 각각 묘비,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고, 봉분은 모두 원형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음성_권근_삼대_묘소_및_신도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0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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