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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김자수_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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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 김자수 고가 ====== |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monument/1649707.jpg?400|영동 김자수 고가 }} || | **종목** | 시도기념물 (1977년 12월 07일 지정) | | **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역사사건 | | **시대** | | | **소유** | 경*** | | **관리** | 경*** | |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 382번지 | ===== 소개 ===== 선지당은 경주 김씨를 중흥시킨 시조이며, 고려 후기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자수 선생과 손자 김영년이 살던 곳이다. 김자수 선생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에 올랐으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안동에서 숨어지냈다. 그 후 조선이 개국된 후 태종이 형조판서에 오르게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자손에게 결코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선생의 손자 김영년은 문종(재위 1450∼1452) 때 강릉판관을 지내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선지당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후학 양성에 몸바쳤다. 선지당의 구조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현재 순조(재위 1800∼1834) 때 김노경이 친필로 쓴 선지당 현판과 김정희가 장의자손(長宜子孫)이라고 쓴 것이 보존되어 있다. 유적지 안에 있는 김공 정효비각은 인조(재위 1623∼1649) 때 효성이 지극했던 김은·김추 형제를 기리기 위해 경종 원년(1720)에 세운 것으로 구조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옆면에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tag>국가유산 문화재}}
대한민국/국가유산/영동_김자수_고가.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4/02 04:50
저자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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